박정희는 육영수와 결혼하기 직전에 당시 이화여대 1학년이던 이현란(당시 24세)과 동거를 했다고 합니다!
지나 1947년 12월 경리장교였던 박경원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처음 만났다고 하네요!! 두 사람은 1948년부터 1950년 초까지 약 3년가량 사실혼 관계에 있었습니다!
이현란과 약혼한 후 곧 이현란을 용산 관사로 데리고 와서 동거를 시작했다고 합니다!! 그러다가 박정희가 여순사건에 연루돼 감옥생활을 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 금이 갔다고 합니다!! 박정희가 좌익전력으로 구속되기 서너 달 전에 이현란이 사생아 아들을 출산했다고 합니다!! 하지만 이현란이 낳은 아들은 태어나자마자 사망했다고 합니다!
그 뒤 육군 소령으로 진급, 1948년 육군본부 작전정보국에 근무하던 중 여수·순천 사건 연루 혐의를 받았습니다!! 여수·순천 사건 후에 시작된 대한민국 정부의 군대 내 공산주의자를 색출하는 숙군작업에서 박정희는 남조선로동당(남로당) 군부 하부조직책으로 의심받아 그해 11월 11일 체포되었습니다!!
1심에서 “파면, 급료몰수, 무기징역”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“징역 10년으로 감형하며, 감형한 징역을 집행정지함” 조치를 받았다. 다음 해 1월 강제 예편되었으며[68] 정보국 문관으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!
지난 1950년 6월 한국 전쟁 중 소령으로 현역에 복귀하였고 이후 육군본부 작전정보국 제1과장을 거쳐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될 때 중령으로 진급하고 대구로 올라가는 육군본부의 수송지휘관을 맡았다고 합니다!! 10월 육영수를 소개받았고 육군본부의 전방지휘소가 서울특별시로 이동하게 되자, 그는 서둘러 약혼식을 올렸습니다!
이훈 1950년 11월에 김호남과 이혼하였다고 합니다!! 육종관은 딸 육영수가 박정희와 결혼하는 것을 반대하였으나 육영수와 그의 모친 이경령은 집을 나와 대구 시내에 있는 박정희의 거처 주변에 머물러 있게 되었습니다!! 1950년 12월 12일 박정희는 대구시의 한 성당에서 육영수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!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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